22년도쯤, 병무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다니고 있던 대학교 같은 경우, 별다른 기술훈련 없이 취업맞춤특기병으로 지원이 가능하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메리트가 매우 컸습니다.
특히 1번이 가장 큰 장점이었습니다.
기술행정병 같은 경우, 원하는 보직의 TO가 없으면 지원이 불가능합니다. 설령 TO가 났더라도 선발 기준과 배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원하는 보직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제한적입니다.
하지만 취업맞춤특기병은 지원서에 원하는 보직을 적어 제출하면 그게 끝이었습니다.
저는 이 제도가 생각보다 많이 홍보되지 않아 아쉽습니다. 군 생활 도중 병무청에서 파견을 와서 취업맞춤특기병에 대한 간담회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도 저는 이 제도에 대한 홍보가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정보체계운용/정비 보직을 선택하고, 23년도 육군훈련소로 5주간의 훈련을 받으러 갔습니다.
훈련소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특히 첫날 밤 불침번이 선명합니다. 자고 있는 사이 새벽에 깨서 1시간 동안 당직을 섰는데, 어두운 복도에 혼자 서서 온갖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있을 군 생활에 대한 다짐을 하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세열수류탄을 던졌을 때, 사격장에서의 첫 사격, 야외숙영과 행군. 지금 돌아보면 정말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5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저는 23년도 4월에 육군훈련소로 배치받았습니다.
수료식 때 저는 유급인 줄 알았습니다. 보통 후반기 교육 또는 전속 부대가 나오는데, 전속 부대에 "육군훈련소"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육군훈련소로 전속 부대가 나오셨다면, 조용히 축하드립니다. 학교 부대는 다른 부대에 비하면 근무 여건이 상당히 좋습니다.
조교에게 물어보니 잘 모른다고 하더군요. (사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친구들도 연대 안에서만 활동하다 보니 다른 곳은 잘 모르는 게 당연했습니다.)
연대에서 대기를 하다가, 누군가 저를 부르시더니 의류대를 들곤 차에 싣고 저와 함께 어디론가 가더군요.
육군훈련소 안에는 연대만 있는 게 아니라 직할대도 있습니다. 그중 저는 정보통신대로 배치받았습니다.
운이 좋게도, 제 동기들은 거의 다 저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제 위로 정말 많은 선임들이 계셨습니다.
처음엔 정말 무서웠지만, 선임분들이 저를 잘 챙겨주셔서 군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물론 군 생활이 다 좋았던 건 아닙니다. 지금도 여러 사람이 기억에 남지만.. 기억에만 남겨두겠습니다. 그래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여러 가지 시각을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 사수분이 같은 개발 도메인을 가지고 계셔서 빨리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맞선임분도 저와 관심사가 비슷하셔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무실 동기들과도 친하게 지내서, 외박 때는 함께 고기를 구워 먹으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정보통신대는 육군훈련소 내의 거의 모든 통신장비, 네트워크, 서버, CCTV, 무전기, 전화기 등을 관리하는 부대입니다.
저는 1년 6개월 동안 전산장비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사실 저는 개발 관련 도메인이 많아서 서버 쪽을 희망했지만, 남은 TO가 전산장비 관리 쪽이어서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배치받았습니다.
전산장비 관리는 단순한 반복 작업이 많습니다. 고장 난 컴퓨터나 프린터를 고치거나, 불출된 장비를 반납받거나, 장비를 재배치하는 등의 업무를 주로 했습니다.
그래도 가끔 제가 가진 도메인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파이썬으로 반복되는 엑셀 정리 작업을 자동화하기도 했고, 동기에게 기술적인 도움을 주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제 지식을 써먹을 수 있었습니다.
9월에 전역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복학까지 정확히 6개월이 남아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임기제 부사관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는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는 시간을 헛되게 보내기보다는, 임기제 부사관으로 전환하여 6개월 더 군 생활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행정보급관님께서도 저를 적극 추천해 주셨습니다. 반면 동기들은 "미쳤냐"고 했지만, 그래도 응원은 해주었습니다.
처음 하사 계급장을 달았을 때는 기분이 무척 묘했습니다. 병사 계급장과는 다른 무게감이 느껴졌고, 앞으로 있을 6개월 동안은 최대한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전환한 이후에는 제 도메인 지식을 살릴 수 있는 서버 관리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병사 때가 단순히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데 그쳤다면, 이제는 제가 맡은 업무에 대해 주도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인정받을 때의 기분도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활이 편해졌습니다. 관사를 지원받고 여러 공과금도 나오다 보니 고정 지출이 거의 없습니다. 덕분에 남은 돈으로 휴가 때 여행도 다니고 생활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저를 잘 챙겨주신 행정보급관님, 그리고 운용장교님께 이 자리를 빌어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분들 덕분에 임기제 부사관으로서의 군 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2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훈련병부터 임기제 부사관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좋은 사람들 덕분에 잘 버텼고, 그 경험들이 저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비슷한 길을 가시려는 분이 있다면, 취업맞춤특기병 제도를 한번 알아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제도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꽤 괜찮은 선택지입니다.
임기제 부사관으로 전환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선택지입니다. 저 같은 경우 근무 여건이 좋았던 덕분에 즐겁게 군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